- 맨프엉의 나폴레옹 솔로와 어카운턴트의 크리스찬 울프 크로스오버 연성입니다
“가만히 있어요, 크리스. 옳지. 그렇게.”
뺨을 지나는 손가락이 유연하게 움직였다. 그 감각에 놀란 크리스가 어깨를 크게 들썩이는 것을, 솔로는 어린애를 어르듯 막는다. 크리스는 그저 눈을 이리 저리 굴리며 불안한 기색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분명 타인이 자신과 이렇게 접촉한 것은 처음이리라. 견디지 못할 만큼 어색하고 이상한 감각일 텐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온 몸을 움찔거리면서도 얌전히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열 살짜리 어린 아이 같다. 그것도 무척 예민하고 민감한 아이 같은 그에겐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고문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뭐, 다른 의미로 그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긴 했다. 어쨌든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는 순진한 몸은 상당히 크고 두꺼웠기 때문에, 지금처럼 아무런 반항 없이 순순하게 따라와 주는 것이 귀찮지 않을 것이다. 기분 좋은 일을 할 건데 괜히 힘 뺄 필요는 없는 법. 지금의 순간은 지금껏 천천히 그와 가까워지기 노력했던 순간이 보상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태까지의 노력에 대한 수확하는 순간이라고 해야할까. 물론 처음부터 이것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지금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동물 같은 눈을 하고, 보기만 해도 미쳐버릴 것 같은 섹시한 몸을 가진 이 남자에 접촉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알면 알수록, 황당한 사람이었다. 솔로는 예전의 동료에게 능력 있는 회계사라고 그를 소개받았을 때는 그렇고 그런 너드 중의 한 명이겠거니 생각했었다.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양복에 넥타이. 도수가 높아보이지도 않는 안경을 쓴 남자는 마냥 무뚝뚝한 얼굴로 저를 삐뚜름하게 쳐다보고, 질문하고, 대답했다. 역시 제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리고 돌아서려던 차에, 처분하려던 그림이 생각나 한마디 얹은 것이 발단이었다. 안경 건너편에, 무기력하게만 보이던 눈이 반짝 빛나더니 전과 다른 말투와 속도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말한 이야기는 정확하다 못해 세밀한 정보들은 백과사전을 뒤지면 발견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백과사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말했다는 것. 거기다가 그가 덧붙인 말에서 솔로는 더욱 놀란다. 사전에서 찾을 수 없는 작품에 얽힌 이야기, 그 작품의 위조품들이 하는 실수, 감정을 하려면 어디를 봐야하는지, 어떤 것들을 조심해야 하는지 등, 그것은 진짜 작품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과거에 얼마간의 전력이 있던 솔로는 그의 말이 모두 옳은 것만을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잠시 동안 회계사가 그의 본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기도 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주 잠시 마주쳤던 눈을 떨어뜨리며 시선을 피하는 회계사를 보고는 조금 혼란스러워지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과 생각보다 재미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솔로는 간격이 좁게 약속을 잡았다. 그 덕에 크리스찬 울프라는 회계사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우선, ‘능력 있다’고 추천받은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천재였다. 수학계산과 예술작품에 있어서 그는 애정을 가지고 집착하고 있었다. 무뚝뚝하게 사무적인 말만 하다가도 흥미로운 수학 퀴즈나 그림 이야기가 나오면 빠른 속도로 반응한다. 게다가 그 정도가 상당한 전문지식에 까지 닿아있어서, 함께 나누는 대화가 솔로의 입장에서도 무척이나 즐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으면 하염없이 반짝거리는 갈색 눈동자가 귀엽기도 했고.
일을 가장한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중요한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가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것. 높낮이 없는 억양,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것, 뛰어난 머리를 가졌음에도 비유적인 표현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보통의 사람들보다 몇 초씩 느린 반응까지 모든 것이 그것으로 설명될 수 있었다. 솔로는 그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졌다는 것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중간 중간에 끊기던 대화들이 그가 자신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것에 확신을 주어 그럼 그렇지, 라며 자신만만해 하기까지 했다. 사실 몇 번의 만남동안 꾸준하게도 그의 반응은 한없이 무미건조했다. 그에게 이렇게 일관된, 무뚝뚝한 반응을 보인 사람은 몇 없었기에 조금은 자존심에 금이 갈뻔 한 것도 사실이다. 덕분에 그의 태도에 대한 이유를 속 시원하게 알게 되어 만족스럽기 까지 하다. 크리스의 반응들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어려워하는 아스퍼거 증후군 탓이며, 데면데면하고 어색하게 굴었던 것 또한 그 감정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리라. 그 후 접근은 조금 더 치밀해졌다. 최대한 그를 자극하지 않도록,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해서 이루어진 만남은 손쉽게 크리스의 경계를 풀고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덕분에 그가 사람들의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며, 우려했던 것보다 빠르게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흥미가 있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기쁜 듯 웃을 수도 있다는 것도. 그래서 생각했던 것보다, 그가 필요이상으로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는 걸 깨달았다. 해맑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그를 바라보며, 조금 위험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지난번 만남.
단순히 회계사와 손님의 사이로 돌아가기는 늦었으니 가끔 만나면 즐거운 친구 사이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솔로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크리스를 살살 달래어 제 옆에 찰싹 붙여놓았다. 긴장으로 빳빳하게 굳은 어깨를 모른 체 하며 그의 뺨과 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다.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살짝 건드리니 동그래진 눈이 솔로를 쳐다보았다가 금세 시선을 떨어뜨리어 아래를 향한다.
그래, 이 얇은 입술이 문제였던 것 같다. 커다랗고 두꺼운 몸에, 손도 크고 길고. 모든 것이 길쭉길쭉 커다랗기만 한데, 이 입술이 너무 얇아서. 옅은 색의 이 부분이 신경 쓰인다. 분명 평범하기 그지없는 남자의 입술일 텐데도.
입술 안 쪽을 손톱이 아닌 부드러운 손가락 부분으로 가만히 눌렀다. 입술을 벌리라는 제스처건만, 그는 그저 당황한 기색으로 입을 한 일자로 꾹 다물고 있다. 이 사람한테 비유는 대화에서건 행동에서건 잘 안 먹히곤 한다. 솔로는 결국 소리를 내어 말했다.
“살짝만 입을 벌려 봐요. 해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
“내가 지금껏 당신을 다치게 한 적이 있었나요? 위협적인 행동이나.”
기억을 되돌리는 듯 눈동자가 조용히 움직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둘의 만남에서 폭력적인 접촉은 조금도 없었다. 근육으로 훌륭한 몸을 가지고 있는 솔로였지만 애초부터 육탄전을 좋아하지 않았고, 크리스와 힘을 겨루어야 하는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싶다. 아주 작게 들릴까 말까한 목소리가 들린다. 솔로는 그의 얼굴 바로 앞에 위치한 덕에 그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아뇨.”
“그러니까 조금만 벌려요.”
제가 말해놓고도 외설적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이었다. 크리스는 아마 그 뉘앙스조차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솔로는 그에게 입을 벌리라고 한 사람은 치과의사 이외에는 자신이 처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이런 의미’로 입을 벌리라고 한 것은 한 명도 없을 것이었다.
말 그대로 아주 조금만 벌어진 입술에, 솔로는 그대로 제 입술을 가져다댔다. 약간은 버석하고, 따뜻했다. 눈을 감고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의 반응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없었지만, 놀랬는지 숨조차 쉬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뿌리치지도, 입을 한 일자로 닫아버리지 않는 것이 다정하고 귀엽다.
“크리스, 착하네요.”
입술을 맞댄 채로 속삭이는데도 그는 그저 얌전하다. 그 모습이 가슴을 찌릿찌릿하게 만들어서, 솔로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좁게 벌어진 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훨씬 촉촉하고 말랑한 것이 혀에 닿기가 무섭게,
“윽!”
강한 힘으로 밀쳐져 크리스에게서 떨어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순간적으로 가슴팍을 밀어낸 손이 너무 매워서 솔로는 연거푸 거칠게 기침을 토해야 했다. 혀를 깨물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겠다고 생각하며 겨우 고개를 들자, 새빨갛게 익은 얼굴로 시선을 둘 줄 몰라 하는 그가 있다.
“아파요, 크리스.”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냥, 잠깐...”
이제 진정된 기침을 부러 콜록거리자 크리스는 당황한 몸짓으로 일어선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 살피고 소파 옆에 풀어두었던 가방을 허둥지둥 어깨에 걸친다. 가슴 앞을 가로지르는 끈을 만지작거리면서 한참을 고민하는데 그 모습이 또 귀엽다. 솔로는 웃음을 참기위해 입술을 꾹 깨물며 눈썹을 팔자모양으로 만들어야 했다.
"일이 생겨서 가봐야겠습니다.”
한참을 생각해낸 이유가 겨우 저렇다. 누구도 설득시킬 수 없을 것 같이 갑자기 튀어나온 어색하고 이상한 변명을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하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아직까지 뺨이랑 귀에 피가 몰려 빨갛게 물들어 있는 모습이 귀엽지만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니 허락을 받은 아이마냥 안심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황급히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니 크리스가 고개를 돌린다. 아주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만나서 즐거웠어요.”
하고 인사를 한다. 그가 의무적으로 하는 헤어질 때의 인사라는 것을 알지만 솔로는 거기에 조금 짓궂게 반응을 하고 싶어졌다. 친절하고 다정하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아까 그를 만진 엄지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스치듯 건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음번에는 좀 더 즐거운 일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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