슨뱃 사다리 리퀘입니다!!!
쏘님이 주도하셔서 여러 존잘님들과 사다리를 탔습니다!!!!!!!
존잘님들과 함께하는 사다리는 긴장되고도 행복하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늦게 올려서 면목이 없습니다ㅠㅠ 손이 느려요 곰소뉴ㅠㅠㅠㅠ왕 곰소뉴ㅠㅠㅠㅠ
제이슨은 능숙하게 카울을 벗겨내고 제 장갑마저 벗은 맨 손으로 그의 뺨을 조심스럽게 쓸어보았다. 그 특유의 창백한 뺨은 불꽃에 근접했던 탓에 후끈거리는 열기가 옮아있었다. 양 뺨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은 보기에 나쁘지 않았지만 옅은 화상을 입은 것일지도 모른다. 차가운 물에 적신 수건으로 뺨을 식힐 겸, 군데군데 묻은 검댕을 닦아주었다. 따가울 것이 분명한데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그는 인상조차 찌푸리지 않는다. 원래부터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제이슨은 아직도 매캐한 냄새가 나는 그의 망토를 젖히고 케블라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함부로 손댔다가는 케뷸라에 숨겨진 장치들에 의해 혼쭐이 나기 쉽지만 제이슨은 해체하는 순서와 방법을 모두 알고 있었다. 모를 리가 없고, 잊을 리가 없다. 이상한 부분에서 절대적으로 일관적인 모습을 보이는 그의 편집증적인 성격 때문인지 몰라도 그와 듀오를 이루었던지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도 그때와 달라진 것은 없었다. 유틸리티 벨트와 함께 마지막 케뷸라까지 벗겨낸 제이슨은 제 입에서 뜨거운 한숨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변함없는 흉터, 아니 전보다 훨씬 더 많이 그의 몸에 새겨진 상처들이 너무도 많아서 그저 아찔했다. 트로피를 모으는 것은 빌런들의 도구로 만족할 것이지, 이토록 몸에 새겨놓을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제이슨은 다시 한 번 물에 적신 수건으로 붉어진 그의 상체를 조심스럽게 닦기 시작했다.
하룻밤이라도 조용히 지나갈 날이 없는 고담의 밤에는 오늘도 작은 사고가 있었다. 사실 작은 사고라기에 물질적인 재산 피해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도심 외각의 페인트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밤거미가 내려앉으면 개미 한 마리 찾아보기도 힘든 고담 외곽의 밤하늘이 노을처럼 붉게 타오르고, 사람들의 비명과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거리에가득 찼다. 그리고 고담에서의 소란은 그를 부르는 소리이기에, 배트맨은 그의 로빈과 함께 공장지대에 도착했을 것이다. 경찰들이 구경꾼들을 막아서고 겨우 빠져나온 피해자의 입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그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자신을 따라 뛰어 들어올지도 모르는 울새에게는 미처 도착하지 못한 소방차들을 대신하여 불길을 진압할 수 있도록 지하수의 밸브를 터트릴 것을 명령했다. 까만 날개자락이 불속으로 사라진 직후, 불쏘시개라도 삼킨 듯 불길은 더욱 거세어졌다.
화재의 발생과 진행과정을 제이슨은 경찰 무전기의 도청을 통해 엿듣고 있었다. 불속으로 뛰어진 배트맨의 위치를 더 이상 파악할 수 없다는 어느 경찰의 외침을 듣자마자 제 발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미리 시동이 걸려있던 오토바이는 빠르게 그 현장으로 저를 이끌었다. 건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오른 공장의 전면에는 일부의 경찰들과 작은 로빈이 화재 진압을 위해 물을 끼얹고 있었다. 소방차들은 이제야 오는 중이었고, 여전히 배트맨은 보이지 않았다. 제이슨은 공장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빽빽하게 자리 잡은 건물들 사이 골목길을 파고들어 매캐한 연기를 내뿜고 있는 건물의 반대편에 바로 도착했을 즈음이었다.
배트맨은 건물 안 가득 쌓인 공업용 물품들이 2차 폭발을 일으키는 마지막 순간에, 한 사람을 움켜잡고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반쯤은 폭발에 휘말려 튕겨져 나갔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제 망토와 자신의 몸뚱이로 다른 사람을 힘껏 감싸 안고 그 뜨거운 열기와 강한 힘을 온 몸으로 받은 탓에, 바닥에 팽개쳐진 것처럼 추락한 그는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두 사람은 숯으로 변해버렸을 것이다. 건물의 폭발로 인해 경찰들이 소란을 피우며 뒤편으로 달려오는데도 배트맨은 움직이지 못했다. 매캐한 연기를 마신 탓에 목에서 고통에 찬 기침소리만 연거푸 내뱉었다. 마찬가지로 의식을 잃은 사람을 안전한 곳에 밀어놓은 제이슨은, 경찰들이 오기 전에 그의 몸을 강제로 일으켰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그를 얹고 현장을 빠르게 빠져나가는 모습은 사실 납치라고 보아도 무방할 터였다.
갈빗대 한 개에 금이 가고 얼굴과 팔에 2도 화상, 오른쪽 발목에 가벼운 골절. 폭발에서 겨우 빠져나온 사람치고 그 대가는 다행스러운 것이었다. 물론 그의 기준에서 일 테지만. 제이슨은 그의 몸 상태를 닦은 후 부상의 정도를 낱낱이 훑었다. 부상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약한 진통제를 주사하고 곳곳에 연고를 발랐다. 마무리로는 갈비뼈가 나간 그의 상체에는 붕대를 단단하게 감고 골절된 발목에도 부목을 대어 고정시켰다. 붓기가 가라앉으려면 한참은 있어야 하겠지만 약물과 붕대로 통증은 조금이나마 줄었을 것이다. 그의 맥박을 짚어보고 호흡을 살펴보았다. 강한 충격에 의해 의식을 잃었던 브루스의 상태가 피곤에 의한 수면으로 바뀌게 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제이슨은 자신의 도미노와 가죽재킷을 벗을 수 있었다. 규칙적이게 흘러나오는 숨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쉬다가 감은 붕대 투성이가 된 몸을 보자 다시 가슴이 서늘해진다. 옅은 갈색으로 흔적이 남은 흉터 위를 생긴 지 얼마 안 된 새로운 상처가 가로지르고 있다. 이러다가 성한 피부는 한뼘도 남지 않을거 같다. 과연 이번엔 며칠째 잠을 안 잔 것인지, 감겨있는 눈 아래 검게 드리워진 다크서클과 더 마른 듯한 뺨을 쓸어보고 손을 내렸다. 피부도 거칠어 진 것 같다. 알프레드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찬가지로 자신의 기분도 불편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치밀어 오른 짜증을 겨우 참으려 마른세수를 한 번 하고는 그의 머리맡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평범한 사람의 몸으로 영웅이 되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지만 브루스는 지나쳤다. 범죄와의 싸움에 대한 그의 집착은 사실 병적인 것이 가깝다. 며칠 밤을 잠도 이루지 않고 적을 추적하거나 패트롤을 돌고 전략을 세운다. 물론 그가 세운 전략은 훌륭하고 패트롤을 돌지 않으면 도시의 온갖 빌런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지치지 않고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초능력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이 사람이 사실은 도시의 여느 사람이랑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 그게 문제였다. 가끔씩은, 브루스가 자기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런 초능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인 주제에 너무 많은 시간을 리그에서 보내는 걸까. 그래서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슈퍼맨이나 원더우먼과 같이 자신도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사실 저도 그렇게 착각을 하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배트맨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어리석게도.
배트맨의 새카만 망토가 고담의 밤하늘을 누비면 저는 그 날개 아래서 작은 몸을 알록달록한 색으로 물들이며 보이 원더가 되었더랬다. 그의 너른 등을 바라보며 그와 함께 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의 곁에서는 그 어떤 빌런과 마피아도 두렵지 않았다. 자신이 뭐라도 된 것 마냥 활개를 치며 돌아다녔다. 그 검은 망토가 제 곁에 있는 한, 작은 로빈은 무적이라고 생각했다. 어리고 바보 같았던 그 때, 자신은 모르는 것이 많았고 그만큼 용감했다.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빛나던 순간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그때를 꼽을 것이다.
그는 좀도둑질을 하던 버르장머리 없는 꼬마에게 왜 로빈의 옷을 맡겼던 것일까, 지금까지도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저에게 실로 엄청난 기회였다. 녹색의 도미노로 눈가를 가렸을 때,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벗어나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었다. 아니, 사실 그랬다. 그 이후 자신은 배트맨의 로빈이었다. 어느 순간에도 그것이 가장 중요했고 그것이 제 전부였다. 배트맨의 심기를 거스르며 튀는 행동을 한 것도, 자신이 아닌 다른 로빈들을 질투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유일하게 가지게 된 것은 제게 가장 소중했고 다른 이들에게 빼앗길 수 없었다. 가장 훌륭한 로빈이 되어야 했다. 원조 다이나믹 듀오를 뛰어넘는 콤비가 되고 싶었다. 자신이 배트맨을 존경하는 만큼 배트맨이 저를 존경하기 바랐다. 단순한 사이드 킥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를 도우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료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고집 부렸다. 배트맨의 의견을 거스르는 어린 제가 가진 주장을 끈질기게 고집했다. 그리고 브루스가 걱정하거나 저를 로빈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면 할수록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자신은 어렸고 부족했다. 그리고 그때 자신에게서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로빈'이었다. 그것만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었으니까. 어두운 밤 지저분한 골목을 돌아다니며 작은 사고들을 저지르지 않아도 되는 것도, 웨인 저에 들어와 브루스와 살 수 있는 것도 다 제가 로빈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로빈이 아니면 안 된다. 절대로 그 위치를 빼앗길 수 없었다.
일말의 불안감을 가진 감정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도 여전했다. 오히려 죽음에서 되살아났다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그 감정은 더욱 심화되고 위험해졌다. 자신을 죽인 조커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그가 나를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생각했던 거 같아서 싫었다. 그리고 그의 검은 망토가 내려앉는 부근 즈음에 새로운 로빈이 서 있다는 것에 분노했다. 자신이 그를 사랑하는 만큼,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를 힘들게 하고 강제로 그의 선택을 종용했다. 사실 끝까지 총을 쏘지 않는 그의 행동은 그 신념에서 한 치도 빗나간 것이 없었다. 당연히 그런 사람이니까 총을 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그에게 화가 났고 서운했으며 눈물이 났다. 그의 존재에서 자신이 빠져나갔는데, 사라졌는데도 그는 분노하지 않았던 걸까. 오히려 말 잘 듣고 훌륭한 다른 로빈을 맞이할 기회라고 치부하며 저를 훌훌 털어 버린 것은 아닐까. 분노는 삐뚤어진 상태로 그를 향했다. 저를 잃었을 때 그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알고 싶었다. 그에게 '제이슨'은 과연 어떤 존재였는지, 저에게는 그가 이 세상에 전부였는데.
지금에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죽음에서 되살아난 자신은 결국 고집쟁이 로빈과 다를 바 없었다. 배트맨의 말에 대꾸를 하면서 제 주장을 펼치던 그 어렸던 모습에서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자신은 여전히 미숙했고 어렸다. 그래서 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그는 배트맨이기 전에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그가 잘 표현하지는 못해도 자신을 아끼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도 그를 아프게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제이슨이 뒤늦게 파악한 것은 그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서도 깨닫지 못했었다. 제가 배트맨, 아니 브루스를 향해 가진 분노와 증오는 그보다 더욱 진하고 질척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신이 그런 감정을 품었을 거라고 결코 상상조차 못했던 탓에 그는 몰랐다.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몇 번이고 그와 부딪히고 싸우고 다치고 다치는 그를 보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 겨우 깨닫게 된 제 감정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패악질을 부리고 스스로에게 착각이라고 돌리며 마음을 다스려 봐도 한 번 자각한 감정을 다시 지울 순 없었다. 어린애였던 자신은 제 감정의 출처를 파악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다가가고 싶고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었던 욕구. 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었고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단 하나의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 분노는 돌려받지 못한 감정 때문이었고 증오는 애정의 그림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뒤늦게 꾸역꾸역 인정하게 된 그 감정은 사실 아무리 제가 빨리 깨달았어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제이슨."
귓가에 스치는 낮은 목소리에 상념에 빠져있던 제이슨은 눈을 번쩍 떴다. 어느새 브루스가 상체를 일으켜 침대에 앉아있었다. 갈비뼈에 금이 간 탓에 통증이 상당할 텐데도 신음 하나 없었다. 약한 진통제여서 별 도움이 되지도 않을 텐데, 독한 건지 고집이 센 건지. 제이슨이 속으로 저 사람에게는 둘 다 해당한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브루스는 제이슨이 해체한 케블라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고개를 숙여 제 상처를 무덤덤하게 보고는 침대로 내려와 다시 옷을 갖추어 입기 시작했다. 화상을 입은 탓에 피부는 아직도 붉고 상체를 가로지르는 붕대는 두텁다. 가장 인간다우면서도 인간 같지 않은 몸을 케블라 속으로 감추며 브루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제이슨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별 반응은 없었다. 단지, 절뚝거리는 발목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가 마음에 걸렸다.
"오른쪽 발목 골절이에요. 많이 쓰지 마요."
"...네가 날 이곳으로 데려 온거니."
제이슨은 대답하지 않았고 답을 기대하지 않은 듯한 브루스는 옷을 정비하는 제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제이슨은 던져놓았던 가죽재킷을 찾아 입었다. 조용해진 실내에 망토가 끌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제이슨이 웨인 저로 데려다주길 바라냐고 짧게 물었고 브루스는 고개를 저어 거절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배트맨이 사라진 직후부터 그의 로빈은 그를 찾고 있었을 것이다. 배트케이브라면 당연히 신호를 통해 배트맨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을 테고 시간이 많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몇 십분 안으로 그의 조력자가 배트 윙을 몰고 도착할 것이다. 브루스도 제이슨도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혹시라도 그가 자신의 배웅을 원할지도 모른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가 조금이라도 제 곁에 머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어간 거다. 부상을 입었으면서도 순식간에 눈을 뜨고 제 옷을 챙겨 입으며 눈앞에서 바로 사라질 것처럼 구는 그와 조금 더 함께 있으려는 얕은 수였다. 진득한 감정을 숨기고 담백하게 내세운, 결국은 통하지 않은 핑계.
걷기 불편한 그는 한 쪽 손으로 벽을 짚어가며 출입구로 향했다. 혹시 부축을 원하지 않을까 했지만 그것도 역시 상상으로 끝났다. 그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배트맨이니까. 그리고 그에겐 이미 조력자와 로빈이 있다. 그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할리는 없다. 출입구 저편으로 그의 까만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마지막 망토자락이 제 구역을 벗어날 참이었다. 우뚝 선 그가 슬쩍 고개를 숙이자 카울에서부터 망토끝자락 까지 이어지는 유려한 선이 도드라졌다. 그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알프레드가 널 많이 보고 싶어 하더구나.”
그의 말에 잠시 심호흡을 했다. 예상치 못한 말에 제이슨은 말의 주어가 ‘알프레드’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치환해서 들을 뻔 했다. 당신은요? 당신은 내가 보고 싶었나요, 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간질거리는 말이 속에서 맴돌았다. 말을 한 사람도, 들은 사람도 어쩔 줄 모르는 어색한 침묵이 잠시 유지되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것 또한, 그 둘에게 어색한 말이었다.
“고맙다.”
어둠 속에 흡수되는 듯 그림자마저 사라지는 그가 마지막으로 던진 말은 들릴 듯 말 듯한 아주 작은 소리였다. 제이슨은 지극히 익숙한 그 목소리로 들리는 그 말의 내용을 믿을 수 없어서 그가 진작 사라진 입구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내가 그 들리지도 않을 것 같이 작은 목소리를 듣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 쳤는지 알고 있을까. 지금 그 한 마디를 들은 자신이 당신이 사라진 곳으로 몸을 날려 그 뒷모습을 숨도 쉬지 못하도록 끌어안고 싶다는 걸 알고 있을까. 끝없이 단념하고 단념하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그 감정이 얼마나 치밀하고 진한 것인지 절대 모를 거다. 언젠가 그 감정이 전해진다면 당신이 할 말은 무엇일까. 더럽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불쌍하다고 동정할까. 지치지도 않고 들뜬 심장을 부여잡고 제이슨은 또 다시 숨을 깊게 내쉬었다. 몸 조심하라고 한마디만 할 걸 그랬다. 미처 내려놓지 못하는 섭섭함과 아쉬움이 공기 속에 가득했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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