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연작도 아니고 안 연작도 아니여 ㅇ<-< 언제쩍에 쓰던 글인지 ㅋㅋㅋ 하드에서 튀어나와서 연성했으 흐엉엉엉엉 ㅠㅠ 이제야 좀 기승전 까지 온거 같아욬ㅋㅋㅋㅋㅋㅋㅋㅋ 우우 ㅇ<-<
오랫만에 썼더니 좀 길어졌네요 '_'!! 으히히 스크롤 주의 +_+!!
흰색의 가느다랗고 날씬한 몸체가 손가락에 적절하게 감긴다. 80mm 길이의 원통. 얼굴에 가져다대니 그 특유의 향내가 심장을 요동시킨다. 두근 두근 거리는 심장을 막을 수 없다. 진정하라고 스스로에게 타일러 보지만 이미 늦었다. 한 개비, 꺼내든 이상, 이미 게임은 끝났다. 이어질 행동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 요망한 기호품을 멀리한지 32시간 째, 세 번째 금연의 실패를 알리는 달콤한 연기가 조용히 공기 중에 뿌려졌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피워왔는데 겨우 하루 조금 넘게 피우지 않았다고, 그새 생소해진 첫 모금이, 목구멍을 포크로 확 할퀴는 듯이 스쳐 내려간다. 머리가 아찔, 하고 핑글 돈다. 새삼 독하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하긴, 요즘의 담배가 점점 더 순해지게 나오는 걸 생각해보면, 분명 독하기로 손에 꼽힐만한 담배다. 요즘 젊은 애들은 잘 피우지 않을 정도의 독한 맛 때문에, 아저씨 담배라고 불리기까지 하니. 아저씨 담배를 피는 나는, 그럼 아저씨인 걸까. 피식 웃고는 다시 한 번 담배를 물고 길게 빨아들였다.
강하게 쏘는 맛에 이어, 깨끗한 묵직함과 신선한 뻑뻑함이 느껴진다. 그래, 바로 이거라고, 이 맛에 도저히 이 못된 하얀 막대기를 끊을 수가 없는 거다. 어지러운 머릿속에서 뿌옇게 느껴지는 담백함에, 너무 즐거워 살짝 몸을 떨었다. 반대 손으로, 주머니속의 하얗고 매끈한 직육면체의 케이스를 꺼내들었다. 탄소 필터를 사용하는 담배라는 설명의 간략한 영어와, 담배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문. 작은, 수많은 별들이 찍힌 케이스는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동시에 세련된 느낌이다. 익숙한 동작으로 뚜껑을 열어젖히니, 은색 종이에 쌓인 하얀색의 기다란 원기둥들이 가지런히 꼽혀있다. 단 하나, 자리를 비우고 있는 녀석은 지금 입에 물린 놈이고. 필터를 잘근, 씹고는 다시 한 번 깊게, 숨을 들이쉰다.
언제부터, 담배를 피우게 됐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왜 하필 이 담배인지도, 유독 이 담배만 피게 되는 건지도 알 수 없다. 언제부턴지, 항상 바지의 뒷주머니에는 이 세븐스타가 꽂혀있었고, 입술은 당연하다는 듯 이것을 빨아댔으며, 목넘김이 부드러운 반면에 머리와 코끝을 아찔하게 울리는 이 향에 익숙해져 있었다.
뭐 이런 악마 같은 일이 있냐는 말이다. 중독성을 둘째 치고, 머릿속과 폐 속을 훑고 지나가는 시큼한 향도 둘째 치고, 왜 세븐스타를 피게 됐는지 이유조차 모르니. 세븐 스타는, 분명 악마가 만들어낸 창작물에 틀림없다.
문득, 세븐스타와 스스로의 접점을 탐구하던 쥬몬지는 '악마'라는 키워드 안에 자신의 뇌리를 뒤흔드는 다른 존재를 연상시켰다. 제길, 쓰게 욕을 뱉으며, 쪼그라들기 시작한 필터를 뱉어냈다. 운동화로 일말의 자비 없이 잘근, 밟아버린 뒤, 투정부리는 것처럼 바닥을 마찰시켰다.
한 번 연상된 악마는, 좀처럼 머릿속에서 사라져주지 않는다. 끈질기게 따라오는 아른거리는 영상, 쥬몬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세차게 벅벅 긁어버렸다.
- 세븐스타 피는 놈은 싫다.
빛나는 노란색의,머리칼이 찰랑이고, 그대로 뒤를 돌아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게 걸어가던 발걸음. 자연스럽게 주머니 속에서 꺼내지던 무설탕 껌. 그리고, 그 껌을 깨물던 미소 짓는 입술.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약간의 웃음이 서린, '비오는 날은 싫어.' 라고 말하는 듯한 담담한 목소리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사라지던 그 뒷모습이.
다리에 힘이 살짝 풀려 가볍게 주저앉았다.
담배를 끊으면, 돌아봐 줄까.
바보 같은 생각에, 멍청한 자식, 이라고 스스로에게 나지막하게 욕을 해준다. 그리고, 그 바보 같은 생각에 의해 금연을 3번 시도했다는 것에 스스로가 우스워져 버리고, 발밑에 보기 싫게 밟혀진 꽁초에 의해 결국 3번째의 금연도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에 한 숨을 쉬었다.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담뱃갑의 존재감에, 그것을 구입한 자신을 다시 한 번 탓하고, 몸을 슬슬 일으켰다. 이젠 진짜 피지 말아야지, 남은 담배는 쿠로키녀석에게 던져줘야지.
그 날 이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향하게 된 동아리 실로, 그렇게 터벅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
동아리 실은 조용하게 비워져 있었다. 한 명의 사람도 없이 조용한 부실은, 청결하다. 어렴풋이 코앞을 간질이는 향내에 킁킁하고 소리를 내며 냄새를 맡아버렸다. 아마도 이건 페퍼민트향. 틀림없다.
시커먼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부실이, 이토록 청결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여자 매니저인 마모리의 역할이 크다. 특히, 도라에몽 주머니라도 있는 것처럼, 각종 도구들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꺼내드는 히루마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기 때문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타입의 여자를 이상형으로 생각해놓았던 것을 떠올려, 쥬몬지는 새삼 머쓱해졌다. 사실, 그게 제대로 된 모양일 텐데. 몬타라는 녀석처럼 마모리의 미모를 감탄하고, 그녀의 섬세함에 두근거림을 느끼는 것이. 사실상, 지금의 자신이 모습은 ‘변태’ 가 아니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같은 남자를, 게다가 성격도 보통 난폭한 게 아닌 그를, 히루마를 보면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까.
테이블위에 얌전하게 놓여있는 커피 잔이 보인다. 반쯤, 남아있는 커피는 향으로 봐선 쓰디쓴 블랙커피, 히루마 뿐이다. 이런 쓴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은. 까만 액체를 머금었다가 목구멍으로 넘길 때의 그 견딜 수 없는 쓴 맛은, 정말 히루마를 떠올리게 만든다. 삼킨 뒤 입 안을 끊임없이 맴도는 그 향 까지.
"보고싶다 .. "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고 나와 버린 한 마디에 쥬몬지는 스스로가 당황해버렸다. 아무도 없는 동아리실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들었을 것 같은 착각에 귓불이 빨개져서 허둥거렸다.
제길, 모르겠다, 입술을 깨물고는 휙, 뒤 돌아버렸다. 성큼 성큼 걸어 동아리 실의 문손잡이를 잡고 거칠게 열어 제키려던 차에, 쥬몬지가 아닌 다른 힘에 의해서 기습적으로 열린 문은 쥬몬지의 머리를 사정없이 강타하고 말았다.
"!!!!!!!!!!!!!!!!!!!!!!!!!"
별을 본 기분이었다. 듣기 민망할 정도로 큰 소리가 나서,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다. 분명 빨갛게 부었겠지, 내일이면 보라색 멍으로 바뀔 테고. 그치만 그런 생각보다도 밀러드는 고통에 양손으로 이마를 부여잡고 문질러댔다. 그리고 그제야 귓가에 침착한 남자 목소리가 들어왔다.
"아.. 미안하군. "
남의 머리가 부서질 정도로 세차게 부딪혀 놓고선, 고작 ' 미 안 하 군.' ??? 담담하기 그지없는 그 목소리에, 사람을 쳤으면 제대로 사과해야 할 거 아냐!? 라고, 소리칠 기세로 고개를 번쩍 든 쥬몬지는, 마주한 늙수그레한 얼굴에 분노를 슬그머니 사그라뜨렸다.
"아저씨!!!??"
"오랜만이네, 쥬몬지군 이랬나?"
쥬몬지의 오지랖 넓고 쾌활한 성격 탓에, 히루마가 체력운동이랍시고 시킨 공사현장 돕는 훈련에서 간간히 부딪히며 안면을 튼 사이였다. 처음엔 그냥 공사장 아저씨려니, 했지만 함께 일을 할수록 신기한 아저씨였다. 체력은 한창때인 쥬몬지 또래의 아이들보다도 세고, 경력덕분 이라고 해도 그 기술과 손놀림이 굉장히 능숙하여 쥬몬지 등에게 묘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저씨 같지 않는 체력에 의외로 나이가 젊다거나 하는 온갖 추측을 내보고는, 카즈키들과 함께 낄낄 거리기도 했었고.
부딪힌 이마는 괜찮나, 아까 소리가 장난이 아니었는데. 에이 이 정도는 뭘, 얼마나 과격한 운동하는 몸인데, 이 정돈 가볍지.
이마 쪽에서 찌릿찌릿 느껴지는 통각은 무시한 체 허세를 부리던 쥬몬지는 내일 아침엔 어떻게 보라색 이마를 가려야 하나 아주 잠시 고민했다. 그리곤, 너무도 자연스럽게 동아리실로 들어가 테이블에 걸터앉는 아저씨를 보고, 의외로 이 장소에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피식 웃어버렸다.
"아저씨, 그러고 있으니까 꽤 폼 나는데. 운동 같은 거 한 적 있어요?"
"옛날일이지. 이젠 그런 거 안 한다. 먹고 살기도 바쁘니."
참 아저씨 다운 팍팍한 말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부에 들어올래요? 농담처럼 흘렸다. 쥬몬지의 말이 실없는 농담이란 걸 알아채며 능숙하게 웃어넘긴 그는 자연스럽게 옆에 놓인 머그컵을 들고 식은 블랙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너무 자연스러운 그 모습에 쥬몬지는 그저 웃다가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던 담배를 그에게 가리켰다.
"금연하려는데 계속 실패해서, 또 사버렸어요. 세븐스타, 어차피 버릴 건데 아저씨 드릴까? 항상 피시던 거 아냐?"
"그럼 나야 고맙지. 담배 살 돈도 굳고."
"어, 그럼 나중에 음료수 한 번 사주면 되겠네."
세븐스타 한 갑을, 한 개비가 빠진 한 갑을 슬쩍 던졌다. 한 손으로 멋지게 그 담배를 잡아챈 그가 히죽 웃었고, 쥬몬지도 반사된 거울같이 히죽 웃었다.
먼저 가볼게요, 아, 아저씨 이름 좀 가르쳐주세요, 담배도 주고받은 사이에. 넉살좋은 웃음 짓는 쥬몬지를 보며 머그컵을 달칵, 내려놓은 아저씨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난 타케쿠라다, 타케쿠라 겐.
++
쩝, 쥬몬지가 입맛을 다셨다. 이틀이다, 벌써 이틀 동안 히루마를 볼 수 없었다. 훈련도 하지 않고 운동장 구석에 쭈그려 앉은 상태로 열심히 뛰어다니는 세나들을 보며, 멍하게 생각에 잠겼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보여주고 싶지 않은 온갖 장면에서는 지겹도록, 끊임없이 나타나더니. 정작 보고싶을 때엔 절대 나타나 주지 않는다. 뭔가 힘이 빠지는 기분이다, 손가락으로 모래바닥을 쓱쓱 문질렀다. 히,ㄹ ,ㅜ, 자기도 모르게 끄적거리던 글씨를 황급히 손바닥으로 지워버리고 이번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디서 뭐하고 있냐, 대체.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아아, 정말 바보 같다. 머릿속에서 다시 유혹이 시작된다. 담배 한 개비, 세븐스타 두 개비, 하얗고 날씬한 원 기둥이 세 개비..
찌뿌둥한 다리를 일으켰다. 더 이상 먼지 나는 운동장 옆에 있고 싶지 않다. 어디가냐는 물음에 산뜻하게 변소라고 답해주며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 악마 놈 때문에,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걸음은 라커룸으로 향하고 비어있던 손엔 가방을 집어 들고, 두 발이 자연스럽게 교문 밖으로 향했다. 항상 다니던 길에, 쥬몬지를 기다리며 서 있는 듯한 담배 자판기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결국, 만날 수 있는 건 너 뿐이구나.
+++
어디에 있을지, 뭐하고 있는지 좀처럼 가늠할 수가 없다. 정체도 성격도 알 수 없는 이상한 녀석이니까. 그러니까,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담배 한 개비 마음 편하게 펼 수 있는 곳을 찾아서. 복잡한 골목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 그냥. 조금만 걸으면 시원스런 강이 보이는 강뚝과 연결되는 길로. 그저 걸어왔을 뿐인데. 그래서, 이런 곳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절대로 상상하지 않았는데.
그리고 악마의 우는 모습 따위 있을 거라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데.
전혀 없었는데.
“히루마!!”
혹시라도, 다치기라도 한 것은 아닐까.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멀거니 서 있는 모습에 한 달음에 달려가 어깨를 부여잡았다. 히루마 답지 않다, 힘없이 나른하게 서 있는 이 모습이. 히루마같지 않고 너무나 연약해보여서,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언제나와 똑같은 말끔한 모습으로, 조금의 반응도 없이 약간은 담담한 표정으로 , 투명한 눈물을 흘리고 있는 히루마가, 너무나도 가슴 아팠다.
왜 여기에 서 있는 거야, 이 시간에 그것도 혼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누구한테 맞기라도 한 건 아니지, 다쳤다거나, 서 있기 힘들면 앉아서 이야기할까? 혼자 걸을 수 있겠어? 부축해줄까?
수많은 물음을, 목구멍을 간질이고 있는 수십 개의 질문을 갈무리지어 삼키고는 마른 어깨를 끌어안았다. 아아, 직감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나의 영역이 아니구나.
나로, 치유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구나.
화가 나서 머리가 핑글, 돌아 버릴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의식은 차분히 가라앉아 오히려 차가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기 보단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히루마의 곁에 있고 싶었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 그리고 유일한 일인 것처럼 보였다.
평소의 자신을 되찾는 것은, 히루마에게 무척이나 간단한 일이었다. 아니, 제3자의 입장에서 본 결과니까 당사자에게는 굉장히 힘들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우는 모습을 원치 않게 공개해버린 히루마는 굉장히, 무심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멀쩡했다. 옆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어정쩡 거린 것은 오히려 쥬몬지였다.
히루마는 굉장히 침착한 목소리로, 자신을 단단하게 감싸 안은 주몬지의 팔을 건드려 답답하다고 말 했고, 화들짝 놀라 불에 데인 듯 손을 떼버리는 쥬몬지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잠시 쳐다본 다음, 목이 마르다고 말하고 혼자 강이 보이는 뚝으로 올라가 버렸다. 멍하게 쳐다보던 쥬몬지는 히루마를 그대로 따라가려다, 지나온 길 어딘가에 있던 음료수 자판기를 생각하고 허둥지둥 달려갔다. 그리고 그렇게 땀까지 흘려가며 사온 음료수를 보고 사와도 이딴 걸 사오냐며, 센스 한 번 더럽게 없다고 욕해주고는, 쭉쭉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셔버리고 빈 캔을 무심하게 던졌다. 빈 캔마저 받아버리고 멍하게 히루마를 바라보는 쥬몬지에게 힐끔 시선을 주고 손을 내밀었다.
“내놔.”
“뭐, 뭘?”
“담배.”
귀신같기는, 진짜 방금 산건데, 완전 끊으려고 하다가 방금 산건데.
쥬몬지는 작게, 매우 작게 중얼 거리면서 세븐스타를 내밀었다. 포장도 뜯지 않은 완벽한 형태의 새 담배 갑을 받은 히루마는, 그 비닐을 무참히 뜯어 뚜껑을 열어 버렸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숫자를 세다가 한 개피를 꺼내 들었다.
“너 담배 안 피잖아?”
“당연한거 아냐? 운동선수가 담배를 피다니, 최악이지.”
1초도 안되서 흘러나온 히루마의 답변에, 담배피는 운동선수인 쥬몬지는 찔리는 기분이 들어 잠시 노을 진 하늘을 바라봤다. 해가 참 노랗다. 아니 표현이 이상하군, 노랗고 동그란 게 계란 노른자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 느낌은 아니고.
하늘을 보고 하잘 것 없는 생각을 하던 쥬몬지는 히루마의 망설임없는 다음 행동에 화들짝 놀라버렸다.
“너!? 담배 안 핀다며!?”
히루마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경악에 가까운 얼굴로 히루마를 쳐다보는 쥬몬지를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눈으로 말했다. 뭐해, 불 안 붙이고.
참으로 뻘한 소리지만,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담배 피는 사람이 멋지다거나 섹시하다거나, 그런 소리를 하는 여자애들을 보면 그게 다 무슨 소리냐며 무시하고 넘겼는데. 이제야 그 소리가 무슨 말 인지 알겠다. 담배를 물고 있는 히루마는 정말..
그래서, 나도 모르게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여준 거 같다. 원래는 담배를 안 피는 사람이라든지, 체력관리에 엄청 신경 쓰는 운동선수라는 걸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정말 잘 어울린다. 얇은 입술과 하얀 치아가 물고 있는 담배가.
히루마가 담배를 피고 있으니, 옆에서 한 개비정도 같이 펴도 상관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쥬몬지는 왠지 담배에 손이 가지 않았다. 이상하다, 분명히 오늘 하루만 해도 수십 번도 넘게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한 하얀 막대기에,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다. 심지어 옆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데도 끌리지 않다니, 이상하기 그지없다.
히루마가 담배를 피우는 동안 잠시 조용했다. 주황색 하늘로 뿌연 연기 한줄기가 가느다랗게 올라갔다. 강뚝은 그다지 넓지 않았지만 둘 이외의 단 한 사람도 없었기에 충분히 넓었다. 짧게 깔린 풀들은 주황색 하늘의 색을 받아 짙은 푸른색으로 그 무게를 더해갔다. 비현실적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지나쳐가는 길이지만, 이런 순간은 없었다. 사실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담배 피는 히루마와 담배피지 않는 쥬몬지. 동아리 실이나 운동장이 아닌 장소에서 둘만 있는 히루마와 쥬몬지.
눈물을 흘렸던 히루마와 그를 좋아하게 된 쥬몬지.
“더럽게 맛없네.”
히루마가 담뱃재를 털었다. 파란색 잔디위로 까만색 재가 톡톡, 떨어졌다. 작은 재는, 그래도 재라고 연기를 내며 식어갔다. 작게 타는 소리도 들린 것 같다. 짧아진 꽁초를 마지막으로 깊게 빨아들이고 운동화 뒤꿈치로 잔디를 문질러 드러난 흙바닥에 비벼 껐다. 조금은, 쿨럭 거렸던 거 같다. 저래 뵈도 굉장히 독한 담밴데, 아저씨 담배. 숨을 삼키지 않고 내뱉지도 않고, 폐 깊숙이 빨아드리는 속 담배를 했으니 당연한건가. 히루마에게 맴도는 담배의 잔여향이 그저 어색했다.
“나 담배 끊을 거야.”
“? 누가 궁금하다고 했냐?”
“니가!! ...담배 피는 사람은 싫다고 했잖아.”
순간 놀란 히루마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쥬몬지는 그것에 두근거렸다. 마치 가슴속에서 작은 새가,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 잠시 크게 뜨였던 히루마의 눈이 슬쩍 웃었다. 아, 또 심장이 뛴다. 쥬몬지는 아찔함을 느꼈다. 마치, 그러니까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고 굉장한 속도로 내려왔을 때와 같은 아찔함.
“너, 그렇게 내가 좋냐?”
..정말 뻔뻔하기도 하지. 저런 말을 상대방 앞에서 대놓고 하다니. 빙글 빙글 웃으며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는 히루마와 달리, 쥬몬지는 귀 끝까지 붉어져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니까, 그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버벅거리는 내버려둔 상태로, 히루마가 일어섰다. 흙이 붙은 엉덩이를 가볍게 털고 쥬몬지를 빤히 바라보며,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럼 사귀자.”
쥬몬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까부터 정상이 아니었지만, 쥬몬지는 멍하게 입을 벌리고 두 어절의 짧은 말을 되짚고 되짚어 보았다. 자신이 들은 소리가 진짜 히루마가 한 이야기인지, 혹시 자기의 마음이 어느 순간 튀어나와 버린 것은 아닌지, 혹시 딴 소리를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그리고 그것들을 온전하게 확인하기도 전에 히루마를 따라 일어나 그의 손을 잡았다. 쳐내거나 뿌리치는 것도 없이, 히루마는 그냥 서 있을 뿐이었다. 언제나 똑같은, 약간은 신경질적인 표정을 하고 쥬몬지와 눈을 마주친 상태로.
히루마가 걸음을 옮겼다. 평소보다 천천히 걷는 것이, 쥬몬지는 자신을 배려해주는 기분이 들어 목울대가 간질 간질 거렸다. 사실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말하고 싶은 것들도 산더미같이 쌓여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더럽게 현실감 없는 이 상황이, 혹시라도 갑자기 끝나게 될까봐 오로지 그것만이 걱정이 되었다.
두 사람 중 누구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fin
4편이 어떻게 될지는 모 르 겠 다 ㅠㅠ
우우 그나저나 수츠 너무 재밌네 ㅠㅠ
'기타 장르 > 아이실드2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쥬히루] 세븐스타2 (0) | 2011.07.28 |
---|---|
[쥬히루] 세븐스타1 (0) | 2011.07.28 |
[무사히루] 달래기 (0) | 2011.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