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뱃] 핫도그 외전
안녕하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 핫도그 ㅋㅋㅋㅋ저놈의 제목이 거슬리지만 아무튼 간에ㅜㅜ 그 글을 쓸때 뒤에 숨겨진 이야기로 머릿속에서 구상했던 부분입니다!!
따로 뽑아 놓기엔 너무 짧은거 같기도 하지만 괜히 부제를 달고 싶어서 ㅋㅋㅋ 이렇게 따로 올립니다ㅜㅜ 외전인만큼 분량은 초 짧지만ㅋㅋㅋ마찬가지로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핫도그 글의 전단계에 있을법한 그런 짧은 글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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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뱃인데 할이 안나와요..
딕->뱃 요소가 조금 있습니다
제목은 '딕 그레이슨의 고뇌' 입니다ㅋㅋㅋ
유연한 근육으로 잘 짜인 균형 잡힌 몸이 높은 창문을 통해 가볍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블러드헤븐은 결코 조용한 동네가 아니다. 물론 고담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요즘 들어 여러 가지 요인들이 뒤섞어 나이트윙의 발목을 잡아끌곤 했다. 매캐한 화약 냄새와 제 것이 아닌 피 냄새가 묻은 수트를 벗으며 그가 낮은 한숨을 쉬었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몹시 지치고 힘든 날이었다. 도미노를 떼어내고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며 빠르게 딕 그레이슨으로 돌아왔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실로 향하려던 참이다. 딕은 그제야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실내에 소리죽인 손님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언제 왔어요? 딕은 차가운 얼음물을 들이키며 놀라는 기색 없이 그를 반겼다.
"온다고 미리 말을 하지 그랬어요, 브루스. 오래 기다렸어요?”
언제나 바쁜 그가 여기까지 대체 무슨 일인가. 그가 배트맨 복장을 하지 않고 블러드헤븐에 온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의 얼굴이 반갑다. 차 한 잔 드릴까요? 딕의 물음에도 브루스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나타날 사람이 아니기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궁금하기도 하고, 슬쩍 걱정되기도 한다. 그가 이렇게 올 정도면 상당히 심각한 일일 가능성이 크다. 배트맨의 복장이 아닌 것을 감안하면 배트맨의 일이 아니라 집안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오랫동안 웨인가에 방문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 배트맨은 훌륭한 범죄투사이자 세계의 영웅임이 틀림없지만, 역시나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는 법이다. 무뚝뚝하고 제 마음 표현 못하기로 유명한 그는 섬세하고 다정다감하게 아들들을 대하지 못했다. 때문에 첫째 아들인 딕 그레이슨이 뒤에 줄줄이 매달린 어린 동생들을 어르고 달래는 일을 도맡아 했던 것이다. 각자 떼어놓고 보면 착하고 제 나이에 딱 맞도록 장난 많고 그저 귀여운 동생들인데, 그들이 평범한 아이들이 아니라는 것이 조금 문제다. 혹시 팀과 데미안의 싸우다가 웨인저택의 일부를 날려먹은 게 아닐까? 제발 알프레드가 그에 휘말려 다친 것이 아니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들고 있던 얼음물을 브루스에게 건네며 넌지시 물어봤더니 팀과 데미안의 문제는 아니란다. 그러면서도 그 차가운 물을 벌컥 벌컥 들이키는 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럼 제이슨이다, 제이슨이 엉뚱한 곳에 총질을 하고 다녔나? 브루스가 이런 심각한 얼굴을 하고 저를 찾아올 정도의 일이라면 그 정도의 사건일 것이다. 한참 동안 먼 곳만 바라보던 시린 눈이 딕을 마주했다. 그 어떤 일에도 흔들림 없이 강인하던 눈동자에서 초조하고 망설이는 기색이 읽혀, 그 분위기에 전염되듯 딕마저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브루스가 작게 신음 같은 한숨을 내리쉬더니 낮은 소리로 딕에게 말했다.
"네게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 딕.”
세상에, 브루스가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다니. 생소한 브루스의 태도와 또 그 말에 딕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브루스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부모님을 잃은 저를 거두어주고 가족들을 만들어준 제 양아버지이자, 자신이 영웅이 되도록 이끌어준 멘토, 그리고 지금은 서로에게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존경하는 동료인 그가, 자신에게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단다. 그 순간 딕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망토 두른 십자군이 자신에게 배울만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크로바틱? 가장 자신 있는 게 그거다. 특유의 가벼운 몸과 재빠른 몸놀림은 이 딕 그레이슨을 따라올 사람이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유머 센스? 음, 그건 타고나는 건데. 아무튼 간에 그가 필요한 것이 뭐든 간에 브루스가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 무척 기쁘다. 뭐든지, 그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고백은 거짓이 아니었다. 딕은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든든하고 멋진 미소를 지으며 브루스에게 말했다.
"뭐든지. 말만 하세요 브루스.”
*
뭐든지 도와준다고 했지만 이건 아니죠, 브루스.
딕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내뱉고 싶은 마음을 겨우겨우 가라앉혔다. 세상에. 배트맨이, 아니 지금은 브루스지만 어쨌든, 그가 저한테 배우고 싶다고 한 것은 전투에 필요한 기술도 사람들 간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대화의 기술도 아니었다. 기술이라면 일종의 기술이기는 했다. 섹스의 기술 중 하나, 구강성교, 그러니까 펠라치오라고 하는 그것. 지금 딕은 저의 양아버지에게 그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것 인줄 알았다면 그에게 뭐든지 물어보라며 제 가슴을 탕탕 치지 않았을 것이다. 민망하고 민망하다. 브루스, 그만하면 안 될까요, 라고 말하려던 딕은 갑자기 들어온 브루스의 질문에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이렇게..하면 되는 건가?”
"어, 그, 조금 더 살살 잡아요, 브루스. 뭉개지고 있잖아요. 진짜라면 큰일이죠.”
한 없이 진지한 표정을 하고, 딕의 말을 경청한 브루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시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껍질을 벗겨낸 바나나의 속살이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들고 조심스럽게 혀를 내밀어 핥았다. 시선을 올려 딕에게 눈을 맞추고 이렇게 하는 것이 맞냐는 듯 그의 확인을 구하는 것에 딕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잠자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어느새 다음 동작으로 넘어간 브루스가 손에 든 바나나를 조심스럽게 입에 밀어 넣고 있었다. 혹시라도 민감한 살이 치아에 닿아 상처를 입을까봐 느리게 행동한다. 과연 브루스. 한 번 말한 것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뛰어난 두뇌와 최선을 다하는 태도.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지닌 브루스는 그야말로 최고의 학생이었다. 범죄에만 관심을 가지고 미쳐있다 할 정도로 힘을 쏟는 사람이라, 심지어 범죄성애자라고까지 불리던 그가,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기술을 연마하려 이토록 노력하고 있다. 딕의 얼굴에 약간은 미묘한, 쓴맛 나는 미소가 지어졌다. 그 사람이 그렇게 좋은가.
딕은 유들유들한 미소를 띠고 있는 할 조던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래, 뭐 잘생기긴 했다. 그의 시크릿 아이덴티티가 밝혀지고 동시에 그의 얼굴이 밝혀졌을 때, 몇 여성 리거들이 가슴에서부터 올라오는 신음을 내뱉더라. 그중에 나이트윙이 좋다며 쫓아다니던 리거 한명이 있었기에 조금 속이 탔었다. 결국 그 후로 저스티스 리그의 공식 미남 자리에 올랐다. 그 자리는 제가 배트맨의 엄격한 명령에 의해 리거들 앞에서 도미노를 벗을 수 없기 때문에 할조던에게 넘어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무튼 간에 얼굴 잘생긴 그는 능력도 상당히 뛰어나다. 지구인 최초의 그린랜턴이니 말은 다했다. 그 사람이 지구를 포함한 광활한 섹터를 지키는 우주 경찰이라는 것이다. 영웅이전에도 실력 뛰어난 파일럿으로 유명했고, 사람자체만 보면 어디 빠질 곳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묘하게 신경이 거슬리는 건 왜일까.
브루스가 할과 교제를 선언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간만에 딕이 브루스와 함께 고담의 패트롤을 돌고 웨인저에서 팀과 데미안의 부탁에 의해(사실 데미안은 자고 가던지 말던지 하고 투덜거리고 말았지만 그 기대감에 작게 볼을 붉히고 눈을 반짝거리는 것을 딕은 놓치지 않았다. 그 쪼그만 투덜이를 키운 것의 반절정도는 제가 했다고 자부하는 딕이었으니 파악할 수 있던 것이다.) 하룻밤 자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 식사시간이었다. 그날, 브루스와 딕, 팀과 데미안이 식탁에 둘러앉아 먹었던 알프레드의 요리가 무엇이었는지도 떠오른다. 알프레드의 수프는 무척 맛있었다. 브루스가 수프 맛을 칭찬하고, 딕이 그의 말에 호응했다. 팀과 데미안이 식탁보 밑으로 보이지 않는 치열한 발차기 전쟁을 벌이는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브루스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알프레드의 수프를 칭찬하던 것과 똑같은 어조로 할과의 교제사실을 밝히지 전까지는. 딕은 그가 재미없는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고 팀은 브루스의 표정과 어조를 통해 브루스가 진심이라는 것을 파악하고는 사색이 되었으며, 데미안은 존경하는 아버지의 믿을 수 없는 발언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브루스의 뒤편에 조용히 서있던 알프레드만이, 요즘 왕래가 잦으시더니 그런 일이 있었군요, 라며 축하하다는 말을 전달했을 뿐이다.
그 후로 와치타워에서도 공공연하게 둘의 관계를 어필하여 많은 리거들이 그들의 관계를 알게 될 때 까지도 쉽사리 인정이 되지 않더라. 결국은 할의 얼굴이 뱃케이브며 브루스의 방에서 보이는 것이 익숙해져서야 브루스가 한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는 것이 실감났다. 브루스 웨인은, 정말 할 조던이라는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브루스 웨인이 겉보기와 다른 남자라는 것을, 딕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잘생기고 단순한, 돈 많은 한량이 아니고, 범죄자들을 자비 없이 심판하는 심장이 없는 십자군도 그의 일부분일 뿐이다. 무뚝뚝한 얼굴 뒤에는 누구보다 여리고 세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브루스이다. 그래서 걱정이 되는 것이다. 가벼운 행실만 보고, 혹은 차가운 그의 부분만으로 판단하여 그에게 상처를 주진 않을까. 애써 숨겨둔 그 마음에 큰 상처를 입어 또 다시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 제 마음을 아무에게도 허락하지 않고 꽁꽁 싸매어 혼자가 되어버릴까, 그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제가 존경하던 빅블루나 강인한 아마존의 공주님이 그에게 관심을 가질 때에도 간담을 졸여가며 그들을 살펴보곤 했던 것이다. 쉽게 남에게 마음을 여는 타입은 아니지만 제 범위 안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의외로 많이 허용하는 그이다. 혹시라도 그에게 우정 이상의 관심을 가진 누군가가 그를 아프게 할까봐 매섭게 눈을 뜨고 그들이 브루스에게 하는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때에 따라 적절한 조언을 하며 그간의 거리를 유지하게 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할 조던이라니.
그를 떠올리면 항상 브루스와 싸우는 장면밖에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성격부터 가치관까지 정말 다르고 달라서 그 둘이 사이가 좋지 않는 것을 모르는 리거들은 없었다. 와치타워에서 으르렁거리고, 그 시비는 가끔씩 뱃 케이브까지도 이어졌다. 얼굴을 마주하고 싸우고, 통신으로도 싸우고, 심지어 화상통신으로도 싸우고. 유치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그 자존심 싸움이 딕이 보기에 그리 보기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 또한 나름대로의 우정 아니겠는가. 모든 것을 신뢰하고 믿는 친구도 있고 의견마다 부딪치고 티격태격하면서 서로의 입장을 고수하려는 관계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실 할 조던이 그에게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해야 하는 말까지 하지 않으면 안했지 가볍게 입을 여는 사람이 아니기에, 브루스가 그와의 관계를 밝히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짐작이 간다. 애초에 할과의 연애가 성립되기까지도 무수히 갈등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정말 고뇌의 시간이었을 거다. 생각해보면 그 영겁의 시간을 견디고 작업을 걸어 브루스의 승낙을 받아낸 할 조던의 의지가 가상하다. 과연 그린랜턴은 그린랜턴인가보다.
한없이 무뚝뚝하고 차가워서 본심을 털어놓지 못하는 그 성격 때문에 가끔씩 옆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외롭고 쓸쓸해지게 만들기도 하는 그이다. 그의 옆에 붙어서 쉴 새 없이 말하고, 시비 걸고, 투덜거리면서도 항상 할 조던의 눈에서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 몽글거린다. 애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감정을 딕이 제 눈으로 스스로 확인하고 난 뒤에는 이젠 어쩔 수 없다는 생각만 들더라. 브루스 또한 평소의 그 깐깐한 말투와 표정을 하면서도 은근슬쩍 그의 스킨십을 떼어내지 않고 받아들인다거나 무시하고 지나가도 수월할 말에 일일이 대답하는 것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 사람이 브루스를, 그리고 브루스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어서, 그래서.
그냥 그들을 지켜보기로 결심했다. 대신 응원을 해준다거나 도와준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딕은, 그냥 뒤에서 지켜보다가 할 조던이라는 작자가 브루스를 힘들게 만들거나 그에게 상처를 줄 것 같으면 제 친구인 월리보다도 빠르게 달려가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딕? 보고 있는 거냐.”
"네? 아, 죄송해요, 브루스.”
거참, 저도 모르게 깊게 딴 생각에 빠지고 말았다. 선생으로서 실격이나 다름없는 제 모습에 머리를 긁적인다. 무뚝뚝한 얼굴로 딕을 빤히 쳐다보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주의할 점을 몇 가지를 덧붙여 설명하면서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제가 가르쳐준 모든 것들을 머릿속에 받아 넣었을 그를 보니, 그냥 방해해버릴까 하는 못된 심보가 슬쩍 고개를 들기도 한다. 충분히 배웠다며 열심히 연습한 탓에 물러진 바나나를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일어서는 그에게 농담 반으로 슬쩍 말을 던진다.
"만약에 그와 싸우거나 하면요, 브루스.”
의아함을 잔뜩 담은 저 파란 눈이 저를 응시하는 것에 이상하게 얼굴이 확확 붉어진다. 묘하게 스릴조차 느껴져, 그가 조금 더 자신을 바라봐주기를 바란다. 반쯤은 진심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딕 그레이슨의 실없는 농담일 뿐일지도 몰라. 그래도,
"나한테 와요. 브루스.”
"딕.”
"기껏 연습한 걸 못 쓰면 아깝잖아요. 제대로 배웠는지도 확인해 볼 겸.”
상쾌하게 웃는 딕을 향해 눈을 한번 찌푸린 브루스는 그의 웃음소리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고는 벗어두었던 겉옷을 챙겨 입는다.
당신은 알까. 언제부턴가 당신의 얼굴이 조금 더 느슨해졌다는 것을. 좀 더 웃고, 말 수가 많아졌으며 가끔씩,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얼굴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딕은 절대로 그것을 브루스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를 그렇게 변화시킨 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도 싫어서, 그가 절대로 모르고 있었으면 한다.
나의 양아버지, 나의 멘토, 제 어린 시절부터 성년이 될 때까지도 자신의 목표였으며 모든 것이었던 사람이 문을 나서고 있었다. 브루스, 나의 브루스.
알지 못할 그리움이 딕은 브루스의 한쪽 소매를 잡아버렸다. 언제나처럼 배웅할 수 있는데, 묘한 제 마음이 그가 조금만 더 제 옆에 있어줬으면 했다가 어서 보내야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당신은 이렇게 가서 결국은 할 조던에게 가겠지. 그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려고 제자에게서 요상한 기술까지 배워서는 그 앞에 가서 엄청 열심히 할 거잖아. 당신이 열심히 하지 않아도, 그런 거 하지 않아도 그는 당신의 어떤 말 한마디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처럼 좋아할 텐데. 그 말이 뭔지 궁금하지는 않아요?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말해버릴 것 같은 얼굴로 그의 소매를 잡고 선 딕에게, 할 말이 있냐며 간단하게 묻는 브루스에게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조심해서 가라면서 괜히 그의 뺨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을 뿐이다. 부모 자식 간에는 얼마든지 가능한 스킨십임에도 부끄러움 때문인지 살짝 어색해하는 그의 얼굴을 보니 가슴 한가득 뿌듯함이 차오른다. 문밖으로 그를 보내며 뭐가 신나는지 그렇게 정신없이 손을 흔들다가, 뇌리를 스치듯이 중요하고도 찝찝한 것이 떠올라 그에게 다그치듯이 물었다. 이건 반드시 물어봐야 했다. 브루스 웨인에게 딕 그레이슨의 정체성에 관해서 상당히,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브루스!! 크게 이름을 부르자 말끔한 얼굴이 돌아본다.
"브루스!! 그런데 왜 이걸 배우러 저한테 온 거에요?!”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