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루] 달래기
무사히루고, 원작과 다른 설정을 조금 끼얹어서.........^_^ 무사시와 히루마가 어렸을 때 만난 적이 있다는 설정이에요 !! 어린 시절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히루마가 사라졌다.
수업시간에 자리를 비우는 거야 예사지만, 부실에도 없다는 것은 뭔가 이상했다. 심지어 수업이 끝나고, 연습시간이 되어도 히루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무사시는, 히루마가 없어지자 연습을 뒤로하고 놀고 있는 삼형제를 반 강제로 운동장으로 끌어내고, 세나와 몬타의 훈련 지도를 마모리에게 맡겼다.
그리고 히루마를 찾아야 한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난리를 피우는 쿠리타를 붙잡아, 히루마는 자신이 찾을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훈련에 집중하라고 그를 안심시켰다. 그의 말에, 작은 눈에 가득 채워져 있던 그렁그렁 한 눈물을 닦고 쿠리타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무사시라면 믿을 수 있으니까.
금세 안심이 된 듯 미소를 짓는 쿠리타의 어깨를 두어 번 쳐주고는 무사시는 부실을 나가 어디론가 향했다. 묘하게도 사라진 사람을 찾는 것 치고는 그의 발걸음이, 익숙한 곳을 가고 있는 듯 일정하고 안정감 있다.
"히루마."
돌아오는 대답 대신 뺨을 스치고 지나간 바람이 제법 차갑다. 이제 쌀쌀한 걸, 무사시는 중얼거리며 풀려있는 교복 단추를 잠갔다.
본래 느긋한 성격이지만 걸음은 빠르다, 학교를 벗어나 도착한 곳은 제법 거리가 있는 오래된 놀이터였다. 망가진 그네, 녹이 슬은 미끄럼틀과 같은 기구들로 채워진 형편없는 모양새의 이 공간은, 새롭게 단장할 공사가 진행되었던 모양인지 공사에 필요한 도구마저 이리저리 흩어져 있어 더 음산해 보였다.
사람의 그림자가 없이 황량하기만한 놀이터에는 인기척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반응이라는 듯 담담한 무사시는 터벅 터벅 발걸음을 옮겨 놀이터 한 쪽에 쓸모없이 세워져 있는 낡은 콘크리트 벽으로 다가갔다. 각종 낙서와 페이트로 뒤덮인 차가운 벽 뒤에, 작게, 사람의 형체가 보인다.
무릎을 세우고 앉아 양팔로 무릎을 감싸고, 얼굴을 묻고 있다. 웅크린 탓에 마른 체구는 작아 보이고 게다가 추워 보인다. 그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삐쭉하게 솟은 금발만이, 그가 히루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평소 히루마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까무러칠 만큼의 의외인 모습이지만 무사시는 이럴줄 알았다는 듯, 작게 미소지었다.
그저 히루마를 빤히 바라보던 무사시는 그와 똑같이 벽에 등을 기댄 채 털썩, 앉아버렸다. 버석거리는 낙엽이 부셔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가을이었다. 널 처음 만난 그 때도.
그 때도 너는 이런 모습이었지. 무사시는 피식, 작게 스치듯 웃었다.
작은 몸을 잔뜩 웅크려 온몸으로 세상과의 벽을 쌓은, 상처 입은 어린 짐승의 모습으로, 그는, 그렇게 시선을 붙잡고 걸음마저 붙들어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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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심심치 않게 아버지를 따라 공사장을 많이 돌아다녔다. 그때는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린 다거나 일에 관심이 있어서 따라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른들이 어린 녀석이 장하게도 아버지를 도우러 온 게 기특하다며, 간간히 쥐어주시는 푼돈들이 좋아서, 그런 정말 어린아이 같은 이유로 부지런히 아버지를 따라다닌 것이었다.
그 용돈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던 초등학생 시절의 무사시에게 평소 아버지가 사주시지 않았던 패스트 푸드를 몰래 사먹을 수 있게 해준, 둘도 없는 행복이었다.
그날도 아버지를 따라가서 받은 돈을 자랑스럽게 손에 쥐고, 혼자서 신나게 패스트 푸드점을 향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을 즈음의 시간이라 텅 비어버린, 꽤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한창 붐빌 시간에도 아이들이 많진 않지만, 더욱 더 조용해진 놀이터를 가로질러 가면서 멀쩡한 그네를 한번 밀어보고 미끄럼틀을 걸어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식의 하잘것없는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누군가가 훌쩍이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분명,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없는 놀이터에서, 아주 작은 소리지만 분명히 사람의 소리였다. 살짝 소름이 돋았지만, 공포보다 강한 호기심에, 어린 그는 길을 가던 것도 잊고 놀이터를 찬찬히 살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그는, 벽 하나로 놀이터와 어설프게 격리되어 있는 공간에서 울고 있는 듯한 조그마한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검정색 머리카락의 작은 아이는, 말 그대로 몹시 작았다. 꽤 쌀쌀한 날씨임에도 반팔을 입고 있어서 그 아래로 보이는 팔은 굉장히 가늘었다. 가리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삐쭉한 머리칼이, 왠지 한 성격 하는 아이 일거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친구랑 다퉜거나, 잘못을 저질러 부모님께 혼이 날까봐 무서워서 인적 드문 곳에서 혼자 우는 아이는 별로 드문 존재가 아니다. 물론 자신도 경험이 있고, 하루에 한 두 번은 이런 아이를 동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울음소리의 정체는 귀신도 아니었고 집 잃은 고양이고 아닌, 그저 평범한 아이. 그것을 확인했으니 되돌아가 그대로 가던 길을 가야만 했다. 여느 때라면 그랬을 텐데. 이상하게도 무사시는 그 아이의 곁에서 떠나지 못한 체, 빙글, 맴돌았다.
이제 추운데, 이러고 있으면 감기 걸릴 텐데, 라고 그저 옆에서 중얼거렸다. '왜 울어?', 라는 뻔뻔한 물음이나, '울지마.' 라는 식의 위로가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작게 앉아있는 아이에게 뭐라도 말해보고 싶어서 말을 꺼냈을 뿐이다. 한참이나 반응이 없는 그 아이 옆에서 바닥에 추레하게 떨어진 낙엽을 꾹꾹 발로 밟으며 부서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상관 말고, 꺼져."
처음 본 사람한테, 아니, 물론 나이는 비슷할 거 같지만, 막힘없이 내뱉는 아이의 거친 말에 어안이 벙벙해져 멍하게 쳐다보게 되었다. 고개도 들지 않은 체, 욕설을 던진 아이의 머리카락에 뚫어지게 시선을 주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말을 듣고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것은, 분명 그 목소리에 젖은 눈물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눈물이 흔적이 역력하지만 애써 감추려는 어린아이의 목소리에 왠지 모르게 덩달아 기분이 이상해 졌달까.
노골적인 시선을 느꼈는지, 아니면 가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아서인지, 갑자기 그 아이가 고개를 번쩍 드는 바람에 눈이 마주쳐 버렸다. 빠알간 볼을 봐선 분명 방금 전까지 울고 있었을 텐데 또랑 또랑한 눈에는 이미 물기의 흔적조차 없다. 뚫어지게 자신을 응시하는 약간 매서운 눈빛이 고양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선이 뜨거워서,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넌 뭐야?, 라는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이목구비 뚜렷한 작고 마른 아이에게 어떤 응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당황하다가, 걸치고 있던 긴팔 재킷을 벗어 걸쳐주었다. 갑작스러운, 자신도 출처를 알 수 없는 행동에, 아이의 눈썹이 살짝 징그려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그저 머리를 긁적이고는 우물쭈물 말했다.
"햄버거 먹으러 갈래?"
삐쭉한 까만 머리칼 밑으로 보이는 얼굴이 벙- 해진 것이, 이제야 좀 아이 다운 얼굴이다. 아까 자신의 표정도 그랬을 거라는 생각에 슬쩍 웃음이 나왔다. 초면에 만나 욕까지 들은 상대에게, 참 이상한 소리를 한 것 같다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옷을 집어던지면서 다시 욕을 할지도 모른다고 지레 겁을 먹으며 눈치를 살폈다.
다시 날카로운 눈으로 되돌아와 자신을 상품을 품평하듯 꼼꼼하게 쓸어내리는 것이, 저절로 침을 꿀꺽 삼키게 한다. 이윽고 녹색이 감도는 눈빛이 살짝 온화해지더니, 입술이 호선을 이루며 예쁘게 웃었다.
순간, 심장이 크게 두근거린 것은 날 선 고양이 같던 녀석이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그 사실에 놀랐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한참 동안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다물어져 있던 작은 입술에서 나온 소리는 굉장히 의외였다.
"난 세트 메뉴 말고는 안 먹어."
그러고는, 오래앉아 있었더니 못 일어나겠어, 라며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은 그 아이는, 뻔뻔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 업어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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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왜 덜컥 업어줬는지 몰라, 나도 순진했었나. 중얼거린 무사시는 다시 한 번 풋, 하고 웃었다.
마른 탓에 생각보다 가볍긴 했지만, 어린아이가, 비슷한 또래의 어린아이 를 업고 걷는 다는 건 상당히 힘들었다. 그래도 애써 땀 흘리며 패스트 푸드점에 도착해서 햄버거를 사줬더니, 세트메뉴가 아니라 싫다는 둥, 이렇게 맛이 없는 햄버거는 처음 먹어봤다는 둥 불평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나중에 나이를 알려주었을 때는, 중학생은 된 줄 알았다면서 배를 잡고 웃어대는 녀석이 얄미워져서 괜히 데리고 왔다는 생각도 했고.
그래도, 사준 햄버거는 남김없이 깨끗이 먹었고, 걸쳐주었던 옷도 깔끔한 상태로 돌려주었다. 무사시가 물은 질문에 의외로 순순히 대답도 해줬고. 그 덕에, 그 꼬맹이 히루마가 -그땐 요이치라고 불렀었지만- 놀이터에 주저앉아 있던 이유도 알게 되었다. 확실히 상냥함과는 거리가 먼, 삐죽삐죽 삐뚤어진 대답 이었지만. 분명 그건 어릴 때부터 고칠 수 없었던 성격임에 틀림없다. 그때와, 다르지 않다. 그때는 조금 더 어설프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만을 제외한다면, 전혀.
고개를 들지 않는 히루마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슬슬 엉덩이가 시린데, 이 녀석은 춥지도 않나.
추위도 많이 타는 녀석이.
"정말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고집불통에 골칫덩어리라니까."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크게 중얼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교복의 겉옷을 벗어 여전히 잠잠하게 앉아 있는 히루마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의 성격을 닮아 뾰족하게 서있는 머리카락은 동시에 그를 닮아 무척이나 섬세하다, 그리고 생각 외로 굉장히 부드러워 감촉이 좋다. 손에 힘을 주어 그의 머리카락을 한껏 헤집어 놓았다.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든다. 마주친 진녹색의 눈동자가,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한 불만을 한가득 안고 있다. 불평 섞인 욕설을 내뱉기 전에, 무사시가 히루마의 앞에서 그를 등지고 자리에 앉았다.
"업혀."
"뭐야, 이 빌어먹을 노땅."
"...잔말 말고 업혀, 요이치."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니까, 작게 투덜대는 목소리가 들린다. 분명, 부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 뭐라고 한 마디 쏘아붙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잠잠하다. 작게 부시럭, 하는 소리가 나더니 등 쪽에 무게가 실린다.
쌀쌀한 기온에 셔츠 너머의 몸이 차갑다. 이렇게 차가워질 때까지, 정말이지 잘도 앉아 있는다. 근성과는 거리가 멀게 생긴 얼굴이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무사시는 잠자코 일어났다. 떨어지기는 싫은 듯, 목을 감싸고 있는 손에 힘을 주어, 단단한 몸을 바짝 붙여온다. 그렇게, 히루마를 업은 무사시는 어느새 노을로 인해 붉어진 바닥을 터벅, 걸었다.
길어진 그림자가 길게 따라붙는다, 아무 말 없는 히루마지만 숨소리로 봐서는 자고 있지는 않다. 분명, 보통 사람은 따라가지 못할 두뇌 속도로, 혼자서 해결해야만 할 무언가를 바쁘게 계산하고 있겠지.
데이몬 데빌 배츠의 사령탑이자 유일한 쿼터백. 근육이 잘 붙지 않는 마른 체격을 보완하기 위해 매일 하는 훈련양만 해도 엄청난데, 모두의 트레이닝부터 시험을 위한 작전을 짜고 교육하는 것도 모두 다 히루마가 맡고 있다. 일개 고등학생이 떠맡기엔 너무도, 버거운 일들이다. 그래도 히루마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누구도 히루마를 대신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이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다시 놀이터의 구석에 낮게 앉아있던 그를 보게 된 것은.
어린 시절의 도피처가 다시 필요할 정도로 그는, 힘들었던 것이다. 그 좋은 머리에 두통이 생길 정도로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도저히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때의 도피처.
낡은 놀이터 한 구석에 세워진 비루한 벽의 뒤편은, 그 마른 등에 짊어진 버거운 짐들을 지탱하기 위해, 그가, 책사가 가져서는 안 되는 나약한 감정들을 허용하는 유일한 장소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나는 히루마의 도피처를 파괴해버린 침입자인건가.
무사시는 낮고 작게 웃었다. 그래도, 거친 회색빛 시멘트 벽 같은 거에 기대서 있는 것보단 칙칙하지만 따뜻한 친구 등 쪽이 더 좋지 않겠나 싶고.
"-어이, 노땅."
"응?"
등으로 전해지는 체온이 어느새 꽤 따뜻해졌기에, 자는 줄 줄 알았었는데. 평소보다 좀 더 낮게 잠긴 목소리가 무사시를 찾는다. 히루마의 머리카락이 살짝 살짝 목덜미를 간질인다.
"전골 먹고 싶어."
버섯이랑 고기 많이 넣어서, 지난번처럼 야채만 잔뜩 넣어놓으면 죽여 버린다, 라며 목을 감싼 손에 힘을 주어 말하는 바람에, 무사시는, 알았으니까 목 조르지 마, 라고 힘들게 대답했다. 동시에 속으로는 바닥을 치는 통장 잔고를 애써 외면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전골도 오랜만이니까. 추운데 오래앉아 있었을 이 바보 녀석에게 따뜻한 걸 먹여 줘야지.
그전에, 애초에 이상하게도, 그의 요구는 절대로 거절할 수가 없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만났을 때의 무례한 순간부터 그랬다. 일찍이 그 순간부터, 악마의 마력에 홀려 그의 포로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조용히 업혀 있던 아까와는 다르게, 무사시의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손에 감으며 장난을 치고 있다. 눈을 힐끗 돌려서 쳐다보니 눈이 마주쳐 버려, 히루마가 또 다시 작게 투덜거린다, 뭘 보는 거야 Fuck' n 노땅. 무사시는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옮겼지만 자연스럽게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것마저 막을 수는 없었다. 벌써, 고민거리는 해결 됐나보다. 남은 일은 가게에 들러서 장을 본 뒤, 히루마를 집에 데려가 뜨끈한 전골을 요리해서 함께 먹는 것뿐이다.
살짝,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제대로 안 잡으면 떨어진다."
"하- 내가 떨어질 거 같냐? 쓸데없는 걱정하지마시지, 노땅."
악마의 포로면 어때.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히루마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나뿐이고, 동시에 그런 히루마를 위로하고 보듬어준 뒤 다시 날려 보내는 것은 나의 의무니까.
목을 감싼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떨어질 리가 없고, 애초에 떨어뜨릴 리가 없지만, 이렇게 단단하게 감싸면 좀 더 안정감이 드니까. 빈 골목길을 걷는 하나의, 한 사람이라고 보기엔 조금 커다랗고 이상한 모양의 그림자가 너울거리며 멀어졌다.
-에필로그
꼬마 둘은 작은 장난감이 포함된 세트메뉴를 포기하고, 작은 데리버거에 콜라만을 먹을 수 있었다. 얻어먹는 주제에 맛없다는 소리를 10번도 더하고, 그러면서도 꼭 꼭 씹어 잘 먹고 있는 아이를 보니까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한 마디 할 때마다 온통 불평 불만 뿐이고, 줄곳 삐쭉거리면서도 자신이 걸쳐준 재킷은 얌전히 입고 있다, 나쁜 아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랑 동갑이라고? 중학생은 된 줄 알았잖아."
...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배를 잡고 웃어 제낄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아무튼 심성이 나쁜 건 아니겠지, 밉살맞은 말만 뱉어내는 그 입이 문제지만. 살벌했던 첫 만남과 다르게 붙임성 있게, 조리 있게 말만 잘한다. 덕분에 평소에 먹었던 세트메뉴가 아닌, 좋아하지 않는 햄버거 였음에도 기분이 좋아졌다. 가게를 나온 두 아이는 이것저것 신나게 이야기 하며 걷다가 어느새 놀이터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방향이 달라지는 듯 했다.
시간이 꽤 지났는지 수명을 다한 가로등이 깜빡거리며 불빛을 토해냈다.
"무사시라고 했지?"
갈림길에 선 그 아이가 까만 어둠을 등지고 사라질 듯이 웃었다. 네 덕분에 잘 먹었다, 하고 맑게 웃는다.
나중에, 볼 수 있으면 또 보자구.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작별인사를 던지며 전혀 머뭇거림 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를 불러 세웠다, 너 이름은 안 말해줬잖아.
빙글, 돌아서서 눈을 깜빡인다. 그리고선 아주 작게, 말했다. 거의 혼잣말처럼. 그럼에도 신기하게 무사시는 바로 자신의 귓가에 속삭인 듯 확실하게 그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히루마, 요이치.
그 아이가 어둠속으로 사라진 뒤에도, 한 참 그 골목을 안쪽을 바라보고 있던 무사시는 그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내일도 놀이터에 오면 볼 수 있을까, 내일 없으면 그 다음날 와봐야지, 그리고 그때에도 없다면 또 그 다음날도 와야지. 상당히 늦은 시간 귀가하는 무사시는 아버지께 혼날 생각도 잊은 채,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갔다.
-fin